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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구체 (Abstract & Con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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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Dialogue

더티워크와 추상화의 허점

이번 주에는 더티워크라는 책을 읽었음. 추상과 구체 그리고 실체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했었던 책임.
문명화 과정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음.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때, 큰 규모의 프로덕트를 적은 인원이 유지보수하고, 사람이 바뀌더라도 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상화가 핵심적임. 여기서 추상화란, “내 관심사”만 챙기고, 관심사 밖의 있는 것들은 그것들을 관리하는 대상의 관심사로 밀어넣고 “잘 되겠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잘 되게해. 우리는 그 구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하는 것임.
‘문명화 과정’은 잔인한 폭력이 실제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더 은밀한 장소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엘리아스의 연구를 형벌사회학에 처음 접목한 데이비드 갈런드에 따르면,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문명화된 감수성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을 세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소프트웨어를 “인터페이스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 각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는 대상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 예를 들어 “커피머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하면, 내가 개발할 것은 getCoffee({type: Americano}) 와 같은 인터페이스를 그냥 호출하는 것임. 저 함수의 구현체는 누구든 큰 상관이 없음.
이렇게 이해하면 효율화가 가능해지고, 한 사람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어서 요즘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추상화적 관점이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 (우리가 챗봇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이유도 결국은 OpenAI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만 이해하고, 구현체는 신경을 안써도 되기 때문임)
그러나 이 추상화의 뒷면에서는 결국 누군가는 구체화를 해야 함.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아닌 우리의 일상으로 넘어가면, 이것은 흔히들 “더티워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해야 함. 이를테면 값싼 가격에 시추를 하거나, 하루에 수천마리씩 소, 돼지, 닭을 도축하거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하게 “치킨을 먹는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이와 같은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더티워크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함. 문명화는 이러한 더티워크들을 추상화 저 뒤편으로 감추고 점점 우리와 거리가 먼 것으로 만들어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이러한 더티워크가 없이는 우리는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가 없음. 나스닥이나 뉴욕 증시를 보면 “교도소 리츠” 같은 것들이 상장되어 있는데, 미국에서 주요 곡물 생산과 같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교도소나 정신병원의 노동력에 의존함.
이러한 관점에서 교도소는 하나의 “기업”이며, 범죄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서 교도소 공실률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생산성에 도움이 됨.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이루어진 생산성 증대” 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추상화 뒤편에 있는 구체성을 문명화라는 이름 하에 저 멀리 걷어차 버렸기 때문임.

문제 해결의 충분한 구체성

한편, 기업을 만들거나 어떤 서비스를 만들 때에도 이러한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함.
기업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고 할 때, 그것에 대한 초기의 생각은 추상화 덩어리일 것임.
이것을 충분히 구체화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가져다써서 합치려고만 한다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함.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임. 단순히 이런저런 인터페이스들을 갖다 붙이는 방식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이전에 있던 것들보다 10배 이상 좋아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함.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해서 만든거라고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인터페이스들을 갖다 붙인 것은 아님. 이들 각각의 요소들을 충분한 구체적 단계로까지 내려가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함.
이전에 사고 (Thinking) 에서 다뤘던 내용처럼, 추상과 구체를 오가면서 여러 은유와 도메인간의 Random Walking을 통해 구체화로부터 출발해서 추상으로 가려는 시도들도 해야 한다고 느낌.
이런 관점에서 요즘에 일론 머스크의 “원자적 생각(Atomic Thinking)” 에 대한 고민들을 현업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서 적용해보려 하고 있음. 즉 “기존에 사용하던 해결책”, “기존에 존재하던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들을 넘어서서 “문제” 자체에 집중하고, 문제 자체를 여러 요소들로 최대한 잘게 쪼개서 질문하는 방식으로 시도 하고 있음.

Quotes

더티 워크

우리 사회는 전쟁하고 범죄자들을 투옥하고 음식과 에너지를 생산해왔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때로 추악하고 폭력적이다. 우리는 어쨌든 그 일들이 제대로 처리되길 원하는 동시에 처리되는 장면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이 더티 워크의 본질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대리인에게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일이 행해지고, 그 일을 누가 하며, 그 밖의 우리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가다. 우리는 스스로 전혀 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싶은 일을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위임한다
더티 워크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들의 행위를 지속시키는 권력의 움직임과 복잡한 공모 관계를 감추는 데 유용하다. 또한 누가 그 일을 맡을지 결정하는 구조적 차별이 은폐될 수 있다. 미국 사회에는 원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더티 워크 일자리가 많음에도 더티 워커 계층의 구성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더티 워크는 선택지와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배정된다.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궁핍한 시골 지역 주민, 미등록 이주노동자, 여성, 유색인이다. 임금 수준이 낮고 물리적 위험이 많은 일자리가 대개 그렇듯, 더티 워크는 기술·자격·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 지닌 사회적 유동성과 권력이 없는, 덜 특권적인 사람들에게 주로 돌아간다
우리가 더티 워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드러낸다. 우리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승인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때때로 우리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죄수들에게 잔혹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풍문을 듣는다.” 그런 행동에 대해 교도관을 비난하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교도관은 사실 “우리의 대리인”일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기에, 교도관이 집행하는 처벌은 사회의 ‘외집단’인 범죄자들이 “선량한 사람들로 구성된 내집단에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처벌”이다. 그 처벌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 하는 정도를 넘어설 때는 좀 나쁜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양가적이다.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교도소는 적은 예산으로 치르는 전쟁과 무척 닮았다. 사기가 떨어지고, 긴장은 높아지고, 최전선의 인력은 자신들이 가진 한 가지 도구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그 도구는 잔인한 물리력이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교도소를 통제할 유일한 방법은 잔인성과 위협과 공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문명화 과정’은 잔인한 폭력이 실제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더 은밀한 장소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엘리아스의 연구를 형벌사회학에 처음 접목한 데이비드 갈런드에 따르면,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문명화된 감수성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을 세탁하는 것도 가능하다

금의 미래

복잡계 이론은 조밀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재귀함수들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한 갈래다. 그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노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지 알아야 한다. 상호작용은 행동의 변화, 즉 적응행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연준은 확률론적인 균형모델에 의존하는데, 이는 현실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모델이다.
복잡계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는데, 이를 창발성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보고 있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복잡계가 더욱 골치 아픈 것은 대부분의 파국이 초기 조건의 지극히 사소한, 알아차리기 어렵고 측량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한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최선의 접근법은 눈송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을 연구하는 것이다
숲속에 축적된 마른나무의 양, 산비탈에 쌓인 눈의 양은 복잡계의 규모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핵심은 실패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치명적인 파국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경제의 극심한 금융화를 보아왔다. 금융은 톱니바퀴에 공급하는 윤활유와 비슷하다. 꼭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엔진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금융은 마치 암세포처럼 전이를 거듭했다.

Reference

일론 머스크
더티 워크
금의 미래